※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시리즈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전작 주인공들이 후속작에 모습을 비추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시대가 흘러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더 반갑고 아련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 마지막 편이었던 영웅전설 5에서 3, 4편에 등장했던(혹은 등장할) 인물들이 등장했을 때,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늙어버린 이올린과 라시드가 비춰졌을 때, GTA 4에서 니코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했던 패트릭(패키)을 GTA 5에서 다시 만났을 때 과거 친구를 수십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과거 친구와도 같은 옛 게임 등장인물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 무조건 반가운 일은 아니다. 과거의 영광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채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만 남았다던가, 정사로 여겼던 엔딩이 휴지조각이 되고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재등장하고, 변절이나 타락, 세뇌 등으로 인해 악의 보스가 되어버리는 경우 등이다. 새로운 주인공으로 추억이 얽혀 있는 전작 주인공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 안 그래도 약한 MZ멘탈이 산산조각나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이유에서 [순정남]을 통해 이러한 사례를 한데 모으고 반차를 쓴 후 얼른 집에 갈 예정이다.
TOP 5. 프로토타입-알렉스 머서, 무고한 민간인 구하려던 모습은 어디로?
프로토타입 주인공인 알렉스 머서. 비록 민간인조차도 다수 죽인 다크 히어로에 가까운 존재지만, 바이러스에 의해 돌연변이가 되어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연일 고군분투 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고자 애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연민이 든다. 실은 인간으로서의 알렉스 머서는 게임 시작 전 이미 사망했고, 플레이어가 만난 알렉스 머서는 그의 몸을 차지한 바이러스 덩어리에 가깝지만, 그 스스로 자신을 알렉스 머서로 칭하기에 큰 무리는 없다. 어쨌든 바이러스 덩어리라고는 해도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그런 존재임은 분명했다. 2편이 나오기 전까진.
후속작인 프로토타입 2에서, 새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제임스 헬러. 그 앞에 나타난 머서는 얼핏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 선배격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본색을 드러내는데, 실제로는 전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려 온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머서는 인류를 멸망시켜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는 싸이코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결국 헬러에게 처치당한 후 흡수된다. 나름 선역에 가까웠던 머서가 갑자기 최대 악이 된다는 급전개는 설득력이 없었고, 결국 팬들은 2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TOP 4. 디아블로 1-주인공 3인방, 세계를 구한 영웅들이 어째서...
디아블로 시리즈의 근본은 역시 1편이다. 더 큰 인기를 끈 것은 2편이겠지만, 1편 특유의 공포스럽고 음습하고 축축한 분위기는 다른 어떤 후속작이나 정신적 계승작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편은 주인공들부터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하는데, 전사 클래스인 아이단은 무려 태생부터 고귀하신 왕자다. 천한 야만부족 전사들이나 마법사들, 도적, 기껏해야 귀족 정도인 다른 캐릭터들과는 근본이 다른 셈. 그런 주인공이 디아블로를 처치한 후 영혼석을 자신에게 꽂아 내면의 세계에서 억누르겠다는 오판을 저지르고, 결국 2편의 디아블로가 되어 새로 플레이어들을 만나게 되니... 그야말로 슬플 따름이다.
참고로 다른 주인공들의 사정은 더 처참하다. 도적 클래스인 모레이나는 악마의 힘에 굴복해 '핏빛 큰까마귀'라는 이름의 중간보스급 괴물이 되어 돌아와서 플레이어들에게 처절한 최후를 맞는다. 원소술사 자즈레스는 상황이 더하다. 아이단과 디아블로와의 최종 결전에서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었고, 이후 악마를 소환해 다뤄 보겠다는 헛된 망상에 빠져 악마들을 소환했다가 결국 그 일당이 되어 역시 플레이어들에게 사냥당한다. 중간 보스부터 최종 보스까지 셋 다 전편의 영웅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팬들의 눈에도 묘한 땀이 주룩주룩 흘렀을 것이다.
TOP 3. 타임 크라이시스 2-로버트,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끝내다니
2000년대 초반 출시되어 아케이드 게임장을 뒤흔든 건슈팅 게임, 타임 크라이시스 2. 발판을 밟아가며 엄폐와 사격을 오가는 이 게임은 지금도 시중에서 현역으로 돌아가는 기기를 쉽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1P 주인공인 키스와 2P 주인공인 로버트는 각각 대표 컬러인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로서 사실상 타임 크라이시스 시리즈를 대표하는 마스코트였다.
2편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들은, 5편에 이르러서야 재등장한다. 작품 내에서는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키스와 로버트 역시 중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만, 로버트가 테러리스트들과 자주 접하다 그들에게 동화되어 신세계를 세우겠다는 야망을 가진다는 점이 문제. 로버트는 동료였던 키스에게 첩자 누명을 씌우고, 2편 히로인이었던 크리스티를 죽이고, 5편 주인공들까지 죽이려 하다가, 결국 좀비 바이러스가 든 미사일을 뉴욕에 떨어뜨리려는 무시무시한 시도까지 한다. 그러다 결국 플레이어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그 와중에 1편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것은 더욱 기분을 착잡하게 만든다. 타임 크라이시스 시리즈가 종말을 맞이한 데는 이런 결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TOP 2. 삼국지 공명전-제갈량, 세기의 책사가 마왕이 되었다
SRPG 형식으로 출시된 삼국지 영걸전. 유비를 주인공으로 실제 삼국지와 픽션을 오가며 벌이는 이 게임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촉나라의 또 다른 주인공인 제갈량을 중심으로 한 2편 삼국지 공명전으로 이어졌다. 이 두 작품은 같은 촉나라 ?瘟堧潔該藪?기본 캐릭터들의 설정이 그대로 이어졌다. 유비와 제갈량은 한나라의 정당한 계승자이자 정의의 화신이었고, 최대 숙적인 조조는 악당으로 유비나 제갈량에게 매번 패해 사망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3편 조조전에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조조가 이끄는 위군 시점에서 진행되다 보니, 전편에서 주인공이었던 촉 측과 맞서게 된 것. 사실 역사에서 선악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긴 한데, 조조전에서는 아예 가상 시나리오로 제갈량을 마왕으로 변신시켰다. 공명전 주인공 일러스트까지 그대로 가져다 쓴 제갈량이 실제로는 현실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는 마왕이었다는 충격적 전개는 많은 이들을 충격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지금도 공명전의 제갈량 일러스트를 보면, 조조전의 마왕 눈을 한 제갈량이 겹쳐 보인다.
TOP 1. GTA 4: 더 로스트 앤드 댐드-죠니 클레비츠, 엑스트라도 저것보단 멋지게 죽겠다
요즘들어 다들 잊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GTA 시리즈에는 확장팩이라는 게 존재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의 확장팩을 꼽자면, 단연 GTA 4의 첫 번째 확장팩인 더 로스트 앤드 댐드다. 레드넥 폭주족들의 마초적 이야기를 그린 확장팩으로, 콘텐츠가 많진 않지만 특유의 흙먼지 낀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라는 평이다. 여기엔 주인공인 죠니 클레비츠를 둘러싼 어둡고 적막한 느와르적 이야기들이 한 몫을 했다.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리버티 시티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느낌으로 마무리하며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그런 죠니 클레비츠는 후속작에서 더없을 최악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은 폭주족 일원들을 이끌고 도시 외곽의 깡촌 블레인 카운티로 이주한 뒤, 마약에 찌들어 건강도 힘도 덩치도 세력도 모두 잃었다. 그 와중 여자친구 애슐리 버틀러와 트레버가 간통을 저질렀고, 하필이면 트레버에게 해서는 안 될 키워드의 욕설을 하고 만다. 이후 트레버에게 얻어맞고 머리를 수 차례 밟혀 사망하는데, 그야말로 전작 주인공답지 않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최후다. 웬만한 빌런들도 이보다는 무게감 있는 최후를 맞이하는걸 보면, 거의 능욕 수준. 차라리 도시 어딘가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을 정도다.
Copyright ⓒ 게임메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