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게임메카는
[순정남] 둠이 왜 여기서 나와? TOP 5 를 통해 각종 희한한 장치들에서 돌아가는 '둠'을 소개한 적이 있다. 현금입출금기(ATM)를 시작으로, 맥북 프로의 가로형 터치 바, 전자계산기, 임신 테스트기까지. 다양한 장치에서 '둠'은 잘도 돌아갔다. 1993년작 '둠'은 굉장히 깔끔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에 굉장히 사양이 낮은 기기에서도 잘 돌아간다. 둠 자체도 서양 게임업계에 있어 굉장히 상징적인 게임이기에, 각종 기기에서 둠을 가동하는 것은 서양 괴짜들의 연례 행사처럼 자리잡았다.
둠 가동을 두고 누가 더 괴짜 같은 발상을 하는지에 대한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가누가 더 기발한 환경에서 둠을 돌리나' 협회를 만들어서 매년 상을 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위 기사가 나온 지 5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신생 괴짜들이 탄생해 위 TOP 5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2020년 이후 등장한, 독특한 둠 가동 사례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TOP 5. 각종 프로그램(MS 워드, PDF, 캡차)
먼저 업무용 오피스 프로그램 안에서 둠이 돌아가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했다. 사이트 방문자를 상대로 봇인지 인간인지를 판별하는 '캡차(Capcha)'에 둠을 포팅해 악마 3명 이상을 처치하라는 미션을 주는 사례부터, PDF 리더, MS 워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둠을 돌린다. 캡차의 경우 발상이 기발하긴 하지만 클라우드 기능을 사용하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는 반면, PDF 리더나 MS 워드는 굉장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구현한 점이 독특하다.
PDF의 경우 자바스크립트코드를 지원하는데, 보통은 보안 문제로 다수 기능이 차단돼 이를 100% 활용할 수 없다. 이에 개발자 ading2210은 차단되고 남은 기능만으로 둠을 구현했고, ASCII 문자로 6색을 출력하고, 초당 3~5프레임을 지원하는데 성공했다. MS 워드는 한 술 더 뜬다. dll와 VBA 매크로 등을 활용해 워드 파일 내에서 풀 컬러 둠이 완벽하게 돌아간다. 사운드 출력까진 못 한 것이 아쉽지만, 어쨌든 업무 파일 중간에 둠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 상당히 멋있긴 하다.
TOP 4. AI 스테이블 디퓨전이 실시간으로 생성해내는 DOOM
대 AI 시대를 맞아, AI들에 둠을 대입하는 시도도 많았다. 보통은 AI에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둠을 플레이 하도록 시키거나 게임 도우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당히 독특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미지 생성형 AI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해, 무려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해가며 둠을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미리 만들어진 맵과 시스템에 따라 결과값을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결과값을 만들어 이미지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스테이블 디퓨전 모델에 둠 게임을 플레이하는 AI 요원을 만들어, 수많은 게임 플레이 장면과 결과값을 학습시킨다. 그러면 해당 모델은 맵이 어떻게 생겼고, 적은 어디에서 생성되어 나오고, 게임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익힌다. 이후 플레이어의 입력에 따라 이에 걸맞는 AI 이미지를 생성한다.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무기를 어디에 쐈는지, 몬스터가 어떻게 대미지를 입고 처치되는지 등이 시뮬레이션 되어 보여진다. 물론 현 AI의 한계로 인해 탄약 수 등이 무작위로 변형되거나 둠 가이 초상화가 흔들리는 등의 버그도 있지만, 기술 발전에 따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TOP 3. 스마트 칫솔 화면으로 둠을!
칫솔로 둠을 돌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 대다수는 "?"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스틱이나 나무 몸체에 모가 달린 칫솔과 전자 게임을 연결짓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칫솔은 전통적인 칫솔이 아니다. 치아 건강을 스마트폰으로 체크하며 입 안 상태를 체크하고 양치질을 관리해주는 이른바 '스마트 칫솔'이다. 이러한 스마트 칫솔은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대부분 모바일 기기 등과 연결해 사용하며 제품에 따라서는 조그마한 액정이 달려 있기도 하다.
트위터 유저 atc1441가 칫솔로 돌린 둠 역시 이러한 액정형 스마트 칫솔을 활용했다. 기기 특성 상 와이파이를 지원하는데다 4MB 플래시를 탑재한 ESP32-C3 마이크로컨트롤러가 들어 있기에 가능했다고. 이에 둠 게임의 전체 크기를 4MB로 줄인 후 포팅하자, 놀랍게도 화면 안에서 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별도의 조작 장치가 없기에 무선 마우스를 연결해야만 했지만 말이다. 결과물을 보면 상당히 부드럽고 빠르고 쾌적하게 풀 컬러로 둠이 가동된다. 그야말로 인크레더블!
TOP 2. 레고 블럭에 우겨넣은 둠
흔히 레고로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까지 할 수 있을 지는 상상도 못 했다. 흔히 보는 반투명 블럭 중 아랫면이 4칸이고 윗면이 2칸인 빗면형 레고 블럭이 있다. 보통 지붕의 경사나 자동차 앞면 등을 만들때 흔히 쓰인다. 가끔은 빗면 부분에 스티커를 붙여, 모니터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이 안에 디스플레이를 넣고 전원을 연결해 둠을 돌릴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
해당 화면은 0.42인치로, 1.06cm에 불과하다. 아무리 픽셀을 잘게 쪼개더라도 기술적 한계가 있기에 상당히 거칠지만, 실루엣을 보면 우리가 아는 그 둠 맞다. 물론 저 안에 건전지를 포함한 다른 부품을 전부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아래쪽에 다른 부품들을 연결한 것이 보이지만, 어쨌든 레고 미니피겨 캐릭터들의 크기에 맞춰 제작한 초 미니 둠 게임기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조작은 물리적 기울이기와 위쪽에 튀어나온 블럭 연결부 2개를 눌러가며 한다고.
TOP 1. 잔디깎이 기계
어떤 독특한 기기에서 둠을 돌릴지에 대한 기기 후보군은 수도 없이 많지만, 잔디깎기 기계까지 참전할 줄은 몰랐다. 잔디밭 마당집이 많지 않은 한국에선 잔디깎기 기계를 흔히 볼 수 없기에 날이 마구 돌아가는 투박한 기계를 덜덜대며 끌고 다니는 모습을 생각하곤 한다. 헐리웃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간혹 주인공의 위로 지나가 옷과 팬티, 머리카락 등을 밀어버리는 그 기계 말이다. 그러나 마당 잔디밭 손질이 일상인 서구권에서는 잔디깎기 기계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진공청소기가 로봇청소기 형태로 진화한 것처럼, 잔디깎기 기계도 비슷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스웨덴 허스크바나가 출시한 로봇형 잔디깎이 머신 '허스크바나 오토모워 NERA(Husqvarna Automower NERA)'는 무려 공식 앱을 통해 기기에서 둠을 플레이 할 수 있게 지원한다. 잔디깎기에 장착된 디스플레이로 게임 화면이 출력되며, 컨트롤 노브 버튼과 스타트 버튼 등으로 조작한다. 독특한 점이라면, 무려 이드 소프트웨어와 협업한 정식 제품이라는 것이다.
*TOP 5 외에도 번외 후보 2개를 더 선정했다. 아래 소개할 사례들은 온전한 하나의 독립형 둠이라고 볼 순 없지만, 독특함에 있어서는 위 둠들을 아득히 능가한다.
번외 1. 감자 전지로 돌리는 둠
위??소개한 모든 둠들은 모두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한다. 파워 콘센트를 연결하든, 건전지에서 전력을 공급받든 간에 상업용 전기를 사용해 둠을 돌린다. 그러나, 여기 소개할 둠은 자체 생산한 전기를 활용한다. 바로 학교에서 배운, 포탈 2에서 글라도스의 전력원으로 등장했던 '감자 전지'다. 감자 100파운드(약 45kg)를 삶고, 이를 삶은 후 770조각으로 분해하고, 전극을 연결해 배터리를 제거한 전자계산기에 연결한 것이다. 6일 간의 시도 끝에 감자에서 발생한 전기만으로 둠을 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도전 중 감자들에서 곰팡이가 피어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결국 해당 실험을 진행한 유튜버는 감자가 싫어졌다고 한다.
번외 2. 장내 박테리아로 돌리는 둠
감자 전지 둠을 포함해 여태 선보여진 모든 둠들은 전자 제품이다. 전기로 동작하고, 브라운관이건 LED건 조그마한 액정이건 간에 모니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전자 제품이 아닌 생체에서는 둠을 돌릴 수 없을까? 이 생각을 실제로 실현한 이들이 있다. 무려 MIT 바이오테크 연구원의 실험작인데, 실제 인간의 장내에 서식하는 대장균을 사용해 DOOM을 실행한 것이다. 일단 박테리아 세포를 32x48 픽셀에 맞춰 배열한 후, 여기에 둠 화면에 맞춘 형광 단백질을 투여해 빛을 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약 70분 후에 원하는 화면이 나오고, 8시간 후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이를 반복하면 프레임 당 약 8.5시간에 걸친 둠 플레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대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려면 대략 600년이 걸린다고 하니, 시간이 남아도는 불로불사 게이머가 있다면 지금 시작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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